“부동산 등기법의 기본, 선착순”
“첫 다섯분에게만 선물 무료 증정,” “7월 1일까지만 한정 판매,” “선착순으로 입장 관람.”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듣는 익숙한 말들이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순서에 관한 놀이는 수백가지나 되며,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순서를 기반으로 한 의사결정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유래가 어찌되었건 이 선착순이란 개념은 우리가 가장 합리적이라고 여기는 판단 기준에 아주 근접하게 자리잡았다. 부동산법도 예외는 아니다.
어느날 부동산 소유주가 한 구매자에게 자신의 건물을 100만불에 팔았다. 이 사실을 몰랐던 또다른 구매자는 다음날 소유주에게 찾아가 그 건물을 110만불에 구입하게 된다. 소유권 이전을 위해 해당 카운티 등기소에 도착한 이 구매자는 본인이 구매한 건물의 소유권 등기를 이미 끝내고 떠나는 한 사람을 보게 된다. 등기소에 확인한 결과 이 건물의 소유권 이전은 이미 완료되었고 이 구매자는 더이상 등기를 할 수 없다는 말을 전해듣는다. 부동산 소유주는 이미 도망간 이후고, 이 구매자는 이전 구매자를 대상으로 소유권 청구 소송을 한다. 이경우 과연 누가 이 건물의 진정한 소유자일까.
이를 판단하기 위하여, 부동산 등기법의 기본 종류를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미국 부동산 등기법은 크게 세가지로 나뉜다. Race Statute, Notice Statute, 그리고 Race-Notice Statute. 부동산법은 연방법이 아닌 주법 관할이기 때문에 각각의 주는 이 세가지 등기법 중 하나를 임의로 채택하고 있다. 일리노이주의 등기법은 법학적으로 판단할 경우 Notice Statute를 따른다고 봐야 옳지만, 주법원이 판결한 대부분의 판례를 살펴보면 일리노이주 등기법을 Race-Notice Statute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일리노이주를 포함한 Race-Notice Statute를 따르는 주에서, 두번째 구매자가 부동산의 소유권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1) 첫번째 구매자의 구매사실을 ‘인지 (Notice)’하지 못했었어야 하고, (2) 첫번째 구매자보다 먼저 소유권을 등기해야 한다. 이 두가지 조건 중 하나라도 충족되지 못하면 두번째 구매자는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
우선 구매사실에 대한 ‘인지’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지 살펴보자. 등기법에서 ‘인지’가 발생했다고 인정되는 경우는 다음과 같이 세가지다. 첫째, 실제적/직접적 인지 (Actual Notice). 즉, 첫번째 구매자의 구매사실을 관계자를 통해 실제로 들었거나 본인이 직접 목격하는 경우다. 둘째, 기록적 인지 (Constructive Notice). 즉, 설령 직접적인 인지는 없었다 하더라도, 부동산 등기부 등의 문서 및 기타 기록들을 통하여 구매사실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고 판단되는 경우를 말한다. 마지막으로, 정황적 인지 (Inquiry Notice). 이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주변 상황을 통해 충분히 구매사실을 유추해볼 수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어, 본인이 구매하려는 집에 누군가가 이미 트럭을 세워놓고 이삿짐 나르는 모습을 목격하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 세가지 기준에 비추어 볼 때, 위에서 언급한 예시의 두번째 구매자가 첫번째 구매자의 구매사실을 ‘인지’했었다고 판단될 만한 근거는 찾을 수 없다. 즉, 두번째 구매자가 110만불을 지불하며 거래를 완료할 당시 그는 해당 부동산이 이미 팔렸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Race-Notice Statute에서 요구하는 첫번째 ‘인지’에 대한 조건은 충족한다. 참고로, 만약 두번째 구매자가 부동산을 구매하기 이전에 첫번째 구매자가 등기소에서 먼저 소유권 등기를 했었다면, ‘기록적 인지’에 의거하여, 두번째 구매자는 첫번째 구매자의 구매사실을 이미 인지했다고 인정되고, 따라서 이 건물의 소유권은 자동으로 첫번째 구매자에게 귀속된다.
두번째 구매자가 Race-Notice Statute의 ‘인지’ 요건을 설령 충족한다 하더라도, 첫번째 구매자가 두번째 구매자보다 실제로 소유권 등기를 먼저 했기 때문에, Race-Notice Statute의 두번째 요건에 의해 이 건물은 첫번재 구매자가 소유하는 것으로 인정된다. 따라서, 만약 일리노이주에서 부동산 사기 매매를 피하고 싶다면, 부동산 거래 완료 이후 신속한 등기는 필수다. ‘선착순’의 사회에서는 남들보다 먼저 도착해야 손해를 줄일 수 있다는 말이다.
본 글은 시카고 한국일보 2019년 8월 29일자에 기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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