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인 (Consideration)이란 무엇인가”
사람의 마음은 변한다. 9가지 장점을 보고 그 사람을 열렬히 사랑하다가도 한가지 단점 때문에 냉정하게 돌아서는가하면, 초등학교 시절 가수를 꿈꾸던 어린아이는 자라면서 정치인, 소설가, 그리고 엔지니어로 그 꿈을 바꾸곤 한다.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해 매일밤 그 집에서 생활하는 꿈을 꾸다가도 막상 계약이 체결되면 다른 집에 마음이 가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일종의 ‘계약’이 법적으로 성립되기 위해선 계약 당사자 간의 ‘마음 일치,’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계약의 필수 요건, 약인 (Consideration)이 미국 계약법에 존재하는 이유다.
독일 계약법의 영향을 받은 한국과는 달리, 영미 계약법을 따르는 미국에는 약인이라는 특수한 조건이 충족되어야 법적인 계약으로 인정된다. 법적인 의미에서의 약인이란, 계약을 체결함에 있어 양측이 서로 교환하게 되는 거래상의 이익 혹은 손실을 일컫는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Give and Take’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약인이 반드시 물질적 가치를 지닐 필요는 없다. 계약법에 의거하면, “어떤 가치가 있는 무엇”이면 약인의 조건을 충족한다고 되어있다. 쉽게 말해, 어떤 계약 행위를 체결함에 있어 내가 특정 행위를 취하거나 금지한다는 약속을 한다면 그것또한 약인이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계약 당사자간의 약인이 반드시 동일한 가치일 필요도 없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나에게 하루동안 커피를 전혀 마시지 않을 경우 백만불을 주겠다고 제안한다면, 커피를 한잔도 안마시는 그 행위 (일종의 손실)가 나의 약인이고, 그에 대한 대가로 지불될 백만불 (거래상의 이익)이 상대방의 약인이 되는 것이다. 즉, 이것은 법적인 의미의 계약이다.
계약법 위반에 관한 법적 소송들을 보다보면 재미있는 사례가 많다. 남자가 여자친구에게 결혼 프로포즈를 하며 반지를 사준다. 여자친구는 반지를 기쁘게 받으며 결혼을 승낙한다. 하지만, 몇달 뒤 이 커플이 결별을 하게되고 남자는 여자친구에게 사준 반지를 돌려받기 위해 법적 소송을 진행한다. 각각의 추가적인 사실 관계에 따라 실제 판결은 다르게 나오지만, 이 프로포즈의 행위가 계약 성립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법적 판단이 가장 기본적인 시발점이 된다. 위에 설명한 약인의 개념을 적용하여 생각해보면, 남자의 경우 반지 (일종의 가치가 있는 그 무엇)를 여자친구에게 주는 대신 결혼을 약속 받았고, 여자친구는 다른 모든 사람과의 결혼 기회를 포기함으로써 (일종의 손실) 반지를 받았기 때문에, 양측 모두 약인의 조건을 충족한다고 볼 수 있다.
만약, 남자가 결혼 1주년 기념으로 여자에게 반지를 사주는 경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결혼은 이미 작년에 이루어졌고 여자는 남자의 반지와 교환할 그 어떤 손실도 없었기 때문에, 이 거래엔 약인이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이것은 계약으로 볼 수 없다.
부동산 계약을 예로 들면, 구매자의 약인은 구매대금이며, 판매자의 약인은 건물이다. 또는, 구매자가 계약서를 작성하면서 얼마의 계약금을 미리 지급할 경우, 구매자의 약인은 그 계약금이고, 건물을 매매시장에서 내리고 다른이에게 팔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는 행위가 판매자의 약인이 될 수 있다.
부동산 계약에 관련하여, 구매자의 약인이 반드시 계약금이어야한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즉, 계약서를 체결하면서 계약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그 계약이 법적으로 무효가될 것을 걱정하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계약서에 별도의 명시가 없는 경우, 약인의 요건 충족을 위해 반드시 계약금이 지불될 필요는 없다. 판매자가 제시하는 조건을 받아들이고 그 건물을 사겠다고 하는 약속 자체도 구매자의 약인이 될 수 있으며, 그 건물이 아닌 다른 건물을 찾아볼 기회를 포기하는 행위 역시 약인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부동산 거래에서 계약금이 요구되는 이유는, 계약금이 이미 지불된 거래에서는 그 계약이 파기될 확률이 현저히 낮아지기 때문이다. 일종의 허수 구매자들을 거르기 위한 방법으로 계약금 제도가 널리 사용되는 것 뿐이다.
본 글은 시카고 한국일보 2019년 8월 2일자에 기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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