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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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칼럼 / 계약금 없이도 약인 성립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영화 ‘봄날은 간다’의 명대사다. 사람의 마음은 변하고, 그로 인해 예상치 못한 아픔을 겪는 세상이다. 연인 간에 마음이 변하면 감정의 아픔이 전부일테지만, 계약 당사자 간의 심정 변화는, 감정 이외의 물질적 손해를 동반한다.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미국은 한국보다 계약 파기로 인한 분쟁이 조금이나마 적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미국 계약법에는 한국 계약법에 없는 계약의 필수 요건이 한가지 더 추가되어있기 때문이다.

독일 계약법의 영향을 받은 한국과는 달리, 영미 계약법을 따르는 미국에는 약인 (Consideration)이라는 특수한 조건이 충족되어야 계약으로 인정된다. 약인이란, 계약을 체결함에 있어 양측이 서로 교환하게 되는 거래상의 이익 혹은 손실을 말한다. 쉽게 말해, ‘Give and Take’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약인이 반드시 물질적 가치를 지닐 필요는 없다. 계약법에 의거하면, “어떤 가치가 있는 무엇”이면 약인의 조건을 충족한다고 되어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일 수도 있고, 특정 행위를 취하는 것 혹은 금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서로의 약인이 반드시 동등한 가치일 필요도 없다. 하루만 길거리에 껌을 뱉지 않는다면 천만불을 주겠노라 누군가 약속을 했다면, 이 계약에도 약인의 조건은 충족되는 것이다.

예컨데, 철수는 영희에게 결혼 프로포즈를 하며 반지를 사준다. 영희는 “Yes!”를 외치며 기쁘게 받는다. 이경우, 철수는 반지 (일종의 가치가 있는 그 무엇)를 영희에게 주는 대신 결혼을 약속 받았고, 영희는 다른 모든 사람과의 결혼 기회를 포기함으로써 (일종의 손실) 반지를 받았기 때문에, 양측 모두 약인의 조건을 충족한다. 만약, 철수가 결혼 1주년 기념으로 영희에게 반지를 사주는 경우라면 어떨까. 결혼은 이미 작년에 이루어졌고, 영희는 철수의 반지와 교환할 그 어떤 손실도 없기 때문에, 여기엔 약인이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이것은 계약으로 볼 수 없다.

부동산 계약을 예로 들면, 철수가 영희의 건물을 백만불에 청약하고, 영희가 이를 승낙하여 계약이 성립되었을 경우, 철수의 약인은 백만불이며, 영희의 약인은 건물인 것이다. 다른 예로, 철수가 건물 구매를 청약하면서 천불의 계약금을 미리 지급할 경우, 철수의 약인은 그 계약금이고, 건물을 매매시장에서 내리고 다른이에게 팔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는 행위가 영희의 약인이 될 수 있다.

부동산 계약에 관련하여 많은 이들이 오해하고 있는 점은, 구매자의 약인이 반드시 계약금 (Earnest Money)이어야한다는 것이다. 계약서를 체결하면서 계약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그 계약이 법적으로 무효가될 것을 걱정하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계약서에 별도의 명시가 없는 경우, 약인의 요건 충족을 위해 반드시 계약금이 지불될 필요는 없다. 여러 조건에 맞춰 구매자가 그 건물을 사겠다고 하는 약속 자체도 약인이 될 수 있으며, 그 건물이 아닌 다른 건물을 찾아볼 기회를 포기하는 행위 역시 약인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부동산 거래에서 계약금이 요구되는 이유는, 계약금이 이미 지불된 거래에서는 그 계약이 파기될 확률이 현저히 낮아지기 때문이다. 허수 구매자들을 거르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계약금 제도가 널리 사용되는 것 뿐이다.

본 글은 시카고 중앙일보 2017년 4월 3일자에 기재된 칼럼입니다.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page=1&branch=CH&source=CH&category=&art_id=5142490